한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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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동정] 최중경 한미협회장 매일경제 기고(2021.12.8)

관리자 2021.12.16 조회 219

 

美의 공급망 재편…한국엔 中원자재 만리장성 탈출 기회 [Big Picture]

  • 입력 : 2021.12.08 0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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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에 나섰다. 핵심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을 필두로 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유럽연합(EU) 등 서구 선진국을 비롯해 한국·일본·인도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우방국 간 결속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복안이다. 미국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그간 낮은 인건비를 앞세워 전 세계에 값싼 노동력을 수출했던 중국의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영향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우리나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인 한국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모두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첨예한 대결 구도 속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이냐'를 다그치는 두 강대국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 중국 굴기서 '스파르타-아테네' 역사 떠올린 미국



공급망 재편 논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의 국제 분쟁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유엔(UN)과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국제 질서의 양대 축으로 삼고 유럽의 식민지를 해방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초강대국 지위를 구축했다. 일본의 굴기는 1985년 플라자협정에 의한 엔화 절상으로 일본 산업의 가격경쟁력을 초토화해 가볍게 견제했다. 소련의 도전은 자유시장 체제가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에 대해 갖는 시스템 우월성으로 제압했다. 군비 경쟁에서 소련의 비효율적 시스템이 미국의 효율적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중국의 굴기에 직면했다. 표면적으로 중국의 굴기는 일본과 소련의 도전을 합성한 것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미국과 겨루는 군사 대국을 꿈꾼다는 측면에서다.

중국의 도전이 심상치 않은 것은 일본, 소련의 도전과 결정적인 차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중앙통제를 통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추진력 발휘가 가능하면서도 보상은 시장경제 원칙을 따른다. 체제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개인의 창의력을 보상 시스템을 통해 극대화하는 하이브리드형 국가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폐쇄경제이기도 하다. 미국이 일본이나 소련을 견제할 때 사용한 대응 방법이 중국에는 통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은 아마도 미·중 갈등 구조를 '전체주의 스파르타와 자유주의 아테네의 격돌'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강력한 스파르타에 방심했다가 혼이 난 아테네가 되지 않으려면 보다 일이 꼬이기 전에 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것이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본심이다.

◆ 미·중 갈등은 경제 대결 아닌 안보 대결


다시 말해 미국에는 공급망 재편 논의가 경제 이슈가 아니라 안보 이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완벽한 우위를 점하기 전에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고개를 들지 말 것을 요구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칼의 빛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자세를 유지하라고 유훈을 남겼다. 그러나 중국은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 등을 계기로 화평굴기(和平굴起)를 내세우며 미국과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시진핑 주석 시대에 들어서는 중국몽(中國夢)을 천명하며 글로벌 패권국가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이 결코 좌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도전에 유화 제스처를 보냈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정당이 다른 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트럼프의 정책 방향을 수용한 데 그치지 않고 한층 더 강경한 압박에 나선 모습이다.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은 안보 이슈에 관한 한 공동보조를 취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같은 맥락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안보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을 증명한다.

◆ 미국의 공급망 재편 구상


삼성전자가 미국의 요청으로 텍사스 테일러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반도체 생산기지를 미국 안에 두는 것은 물류비용의 절감 등 경제적 편익도 있다. 하지만 기저에는 반도체 공급망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미국 의도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반도체 공급이 끊어지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첨단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생긴다. 특정 국가, 특히 중국을 핵심 공급망에서 배제해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반도체 회사에 주요 고객 명단을 제출하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공개적으로 핵심 정보를 요구하면서 공급망 재편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요구 내용에는 매출과 수주·재고 현황, 고객 정보를 비롯한 사실상의 경영 정보 일체가 포함됐다. 고객사 명단과 각각에 대한 매출은 기업들이 절대 공개하지 않는 극비 정보에 해당한다. 앞으로의 가격 협상이나 신규 고객 확보와 직결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공개할 경우 경쟁사에 자사의 강점과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높은 정보 요구 수위는 미국이 반도체 기업들에 직접적으로 보내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협력하라는 얘기다. 다행히 지난달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자료 제출에선 계약상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는 고객 정보 등의 민감한 내용은 빠졌지만, 미국 정부가 정보 제공 요구를 강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향후 6개월간의 공장 증설 계획과 증설을 결정할 때 고려할 요소를 알려달라고 한 것도 미국에 대한 현지 투자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 한국,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공급망 재편 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에 선택의 여지는 있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존의 반도체 공급망을 살펴보면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로만 짜여 있다. 일본, 네덜란드, 대만, 한국이 공급망에 참여하는 주요 국가다. 소프트웨어는 미국, 반도체 장비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만들고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장비를 이용해 반도체를 찍어내는 분업 구조다.

한국이 미국에 동조하지 않으면 삼성전자에 공급되던 일본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생산 장비와 원자재가 끊길 것이다. 고품질 소재와 외국산 장비 없이 우리나라의 힘만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일본은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 2019년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정부가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독립'에 나섰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순한 이해타산이나 경제적 관점에서 공급망 재편 논의에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된 공급망 재편 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선택의 주체라기보다는 선택의 대상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이미 일선 기업들은 상황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발간한 '최근 5년 대미·중 해외 비즈니스 변화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대미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2004년(16.9%)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가 유력하다. 2017~2021년 10월 누적 대미 수출은 2012~2016년 대비 17.9% 늘었다. 반면 올해 대중 수출 비중은 25.2%로 2017년(24.8%)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최근 4년간(2017~2020년) 누적 해외직접투자액은 직전 4년간(2013~2016년) 대비 75.1% 늘었다. 같은 기간 대중 투자는 23.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미국 우선주의'의 결과다.

◆ 요소수·2차전지 소재…거세질 중국의 압박


공급망 재편 논의가 반드시 한국에 불리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추격에서 벗어남으로써 반도체 산업과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안정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의 대응이다. 중국은 끊임없이 한국 정부와 기업에 압박을 가할 것이다. 요소수 수출 제한 조치도 한국이 중국과 멀어졌을 때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시범을 한번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전략 자원이 아니더라도 세계 공급망에서 사실상 '목줄'을 틀어쥔 물품을 틀어막을 경우 어떤 파급효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요소 외에도 중국의 압박 수단은 다양하다. 한국무역협회가 올해 1~9월 품목별 중국 수입 의존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산업용 주요 원자재 상당수가 중국에 사실상 예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차전지 핵심 원자재인 망간과 흑연은 중국 의존도가 각각 99%, 87.7%에 달했다. 알루미늄 케이블(97.4%)이나 마그네슘괴·스크랩(94.5%), 아연도강판(93.8%), 전기강판(82.0%), 개별 소자 반도체 부품(76.9%) 등 필수 원자재들의 의존도도 매우 높았다.

중국의 지난해 망간 생산량은 약 3167만t, 흑연 생산량은 65만t으로 둘 다 전 세계 1위다. 중국이 2차전지를 시작으로 주요 원자재 공급을 옥죄기 시작할 경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 국가 안보 직결되는 핵심 산업 보호해야


요소 수출 규제와 같은 압박이 품목을 바꿔가며 계속되면 한국이 견딜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속에서 아무런 피해 없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갈수록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과거 우리의 산업정책에 큰 구멍이 있었음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특정 국가에 특정 품목을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곧 예속을 의미한다. 민감한 품목은 국가 보안을 이유로 값싼 외국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요소수의 경우 자동차의 운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기 때문에, 전시 군대 작전차량 운행을 이유로 국가 보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품목의 해외 의존도와 특정 국가 의존도를 전수조사해서 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하루라도 빨리 실시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세계 공급망의 패러다임은 'JIT(저스트 인 타임)'에서 'JIC(저스트 인 케이스)'로 바뀌고 있다. JIT가 주문 즉시 생산·공급하는 기존의 질서에 부합한다면, JIC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재고·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새로운 질서에 부합하는 패러다임이다. 각국은 이제 효율성만 따져 공급망의 연결성에 지나치게 기댔을 때, 유사시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수익 극대화와 효율성에 앞서 공급의 안정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에 100% 가깝게 해외에 의존하는 원자재·자원에 대해선 산업 '안보재'로 설정해 최소한의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유나 식량 재고를 관리하듯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주요 원자재에 대해선 비축 전략을 체계적으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는 "최근 미국이 발표하는 산업정책을 보면 대부분이 공급망 정책"이라며 "한국도 공급망 관리를 위해 정부가 기업과 함께 주요 품목에 대한 비축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중경 한미협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본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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